그런데 암호화폐라는 게 이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 차원에서 암호화폐 기반의 디지털 통화를 법정 통화로 바꾸려 하는 것이죠. 스웨덴은 ‘이 크로나(e-Krona)’라는 이름의 자국 국가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지정하는 걸 검토하고 있고요. 중국은 산둥성을 시작으로 몇몇 지역에 추첨을 통해 국민들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실제 관심은 큰 게, 전세계 중앙은행 중 암호화폐를 연구하는 곳은 9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중앙은행이 만들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 등 민간 암호화폐를 없애게 될까요? 의견이 분분하고, 그만큼 입장이 첨예한 주제인데, 아마 중앙은행의 암호화폐가 투기성 짙은 민간 암호화폐를 겨냥한 것이란 전망 때문에 더 그럴 겁니다.

왜 국가 암호화폐가 필요하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실 지금도 돈이 디지털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죠. 은행 앱으로 송금하고, 간편결제로 물건을 사는 일이 빈번하죠. 우리나라의 모든 결제에서 현금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19.8%(2018년 기준)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소위 ‘현금 없는 사회’에 가까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암호화폐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암호화폐는 Decentralized, 그러니까 탈중앙화된 화폐인데, 이걸 ‘국가’라는 가장 중앙화된 주체가 만든다는 게 상충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탈중앙화는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 CBDC의 공세에도 살아남을지에 대한 질문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습니다. 중앙화된 암호화폐는 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하지만, 탈중앙화된 비트나 알트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CBDC가 나오면 암호화폐의 화폐 역할은 퇴색될 겁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죠. 암호화폐가 등장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간 암호화폐가 화폐 역할을 제대로 한 적은 있었나요? 아니라는 답이 너무 뻔하게 나옵니다. ‘암호화폐의 조상님’ 격인 비트코인조차 그 역할은 거의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박이 있습니다. 세계적 금융 기관들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지정하고 있고, 테슬라와 같은 회사도 자사 차를 비트코인으로 구매하는 걸 허용하는 내용을 검토하고 있지 않냐고요. 하지만 이는 추세일 뿐 보편적으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초당 거래할 수 있는 트렌젝션 수에서 비트코인은 단 7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보편적 거래 수단으로 쓰기엔 속도가 워낙 느리단 겁니다. 암호화폐의 ‘2인자’ 이더리움 또한 이 문제는 벗어날 수 없죠.

금은 귀금속으로서 보석이나 산업에 소량 쓰이지만 실제 활용성은 적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금을 사는 이유는 뭘까요? 기원전후부터 오랜 시간을 거쳐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 인정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당연히 내 현금의 값어치는 떨어지죠. 또 금융자산을 사도 손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내 자산에 금을 포함하면 이런 손실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등장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디지털 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유동성이 부족해 시세 변동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긴 합니다. 다만 실용성에서 금의 가치가 부족함에도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비트코인 또한 실용성은 적지만 디지털 세계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는 인식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관련해 최근 삼성증권 자료가 눈에 띕니다. 지난 4월 9일 ‘원자재 시리즈: 금(金)’이란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에 비트코인의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기대 인플레이션과 동행했는데, 이는 그 사이 지지부진하게 가치가 떨어진 금과는 반대되는 행보입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산가치의 하락을 최소한 올 한 해는 비트코인이 상쇄해왔다는 의미이고요. 또 투자자들 중 21.8%라는 적지 않은 수가 비트코인을 가치 보전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암호화폐는 또 단순한 가치 저장뿐 아니라 다른 역할도 수행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NFT입니다. 기존에는 희소성 있는 자산을 거래할 때 경매소가 이용됐다면, 많은 가치들이 디지털로 나오고 있는 오늘날엔 NFT가 활용됩니다.
NFT는 논 펀지블 토큰(Non-Fungible Token), 그러니까 대체 불가능한 토큰입니다. 여기서 대체할 수 없다는 건 각각의 토큰끼리 대체 불가능하단 건데요, 이는 각각의 NFT가 특정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이 거래되는 데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A라는 그림과 B라는 그림의 값어치가 다른 것처럼, A라는 NFT와 B라는 NFT의 가치도 다른 겁니다. 토큰 간 시세가 연동되지 않고, 또 수량 제한도 없는 겁니다. 일반적 암호화폐와 다르죠.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위시되는 암호화폐는 현재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디지털 금으로서 자산 저장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또 화폐가 돼 정부가 만드는 CBDC와 직접 경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전망하시며, 또 어떤 판단을 내리셨나요?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