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보는 두산그룹의 복잡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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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의 숏리스트(적격 인수후보)가 공개됐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이번 M&A의 승자가 누가 될 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수의향서를 낸 곳들은 매도자인 두산중공업이 이번 매각에 의지가 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매자들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재무상태 등 경영정보를 요청하고 있지만,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자료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원매자들 사이에서 “두산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팔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M&A 과정에서 매도자는 최대한 비싸게 기업을 팔려하고,  원매자는 최대한 싸게 사고 싶어합니다. 매도자와 원매자가 ‘밀당’을 하는 건 인수전에서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두산인프라코어의 사례는 밀당과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 상태를 보려고 실사자료를 요청해도 거의 못 받고 있다”며 “M&A를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원매자들의 볼멘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나왔는데요.

현대중공업지주는 30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는) 실사 중에 있는데 DICC 소송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구조가 안 짜인 상황”이라며 “인수구조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추진하면서 중국법인(DICC)의 소송과 관련한 책임을 지기로 했었죠. 그럼에도 원매자인 현대중공업지주의 컨퍼런스콜에서 이 같은 우려가 나온 건 소송과 관련한 의문점이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대한 의지가 있을까요. 두산그룹의 속내를 예단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매각에 대한 의지가 높아 보이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채권단의 요구에 못 이겨 매물로 나온 계열사입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올해 4월부터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3조원을 지원했고, 두산그룹은 오너일가의 사재출연과 자산 유동화를 약속했습니다. 두산그룹은 같은달 보도자료를 통해 “두산그룹과 대주주는 뼈를 깎는 자세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마련했다”며 “유동화 가능한 모든 자산에 대해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두산솔루스와 두산모트롤, 두산타워 등의 비핵심 계열사의 매각이 추진됐고, 두산인프라코어는 후순위로 매물로 나왔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은 다수의 원매자가 나타나면서 흥행에 성공한 분위기입니다.

매각 가격은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현대중공업지주 및 한국산업은행인베스트먼트 △유진그룹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이스트브릿지 등 입니다. GS건설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인수가치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삭기 등 건설기계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제조업종은 석유화학산업과 전기차 산업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불황인데, 건설기계산업은 꾸준히 성장을 하는 산업입니다. 2019년 글로벌 건설기계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27억 달러(한화 229조원)로 전년보다 9.9% 성장했습니다.

건설기계산업은 2012년 가장 호황이었는데,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2018년에도 이전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지속되고 있어 앞으로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세계 9위의 건설기계 업체입니다. 1위는 미국의 캐터필러(Caterpillar)이고, 2위는 일본 고마쓰, 3위는 존 디어(John Deere)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건설기계는 22위(2019년 기준)입니다. 20위 내에서 국내 업체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유일합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올해 3분기 실적을 보면 코로나19의 영향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올해 3분기 두산인프라코어는 연결 기준 매출 1조9284억원, 영업이익 176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두산밥캣의 실적을 합산한 수치인데요. 두산밥캣은 매각 대상이 아닌 만큼 두산인프라코어의 별도 실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3분기 8548억원의 매출을 냈고, 영업이익은 64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매출은 7494억원, 영업이익은 442억원입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1054억원, 영업이익은 207억원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가 한창이던 2분기에는 매출 1조237억원, 영업이익은 900억원을 냈습니다.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은 58억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500억원 감소했습니다.


중국과 인도, 미국은 건설기계 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 글로벌 건설기계업체의 매출 중 65.8%가 중국(25.3%)과 인도(16.0%), 미국(24.5%)에서 나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3분기 중국 시장에서만 3089억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전년 동기보다 55.0% 증가한 수준입니다. 중국시장의 점유율은 올해 6.8%로 이전보다 하락했지만, 여전히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EBITDA는 연 3000억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8년과 지난해 EBITDA는 각각 3101억원, 2916억원입니다. EBITDA는 이자비용과 법인세, 유무형자산의 감가상각비 등을 차감하기 전 영업이익을 나타내는 지표로 핵심영업활동에서 나오는 이익창출능력에 초점을 둔 수익 지표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두산중공업 다음으로 EBITDA가 높습니다.

두산중공업이 탈원전 정책과 발전 시장의 침체기로 고전 중일 때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은 ‘캐시카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점은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꺼리는 이유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와 두산타워 매각 등으로 채권단이 요구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 중 상당 부분을 이행한 점도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 가능성을 낮추는 이유입니다. 두산그룹은 자산 매각과 유상증자 등으로 3조원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두산그룹은 두산타워를 8000억원에 매각했고, 두산솔루스를 6986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두산의 모트롤BG는 4530억원에 팔렸습니다. 강원 홍천에 위치한 클럽모우CC는 1850억원에 매각됐습니다. 올해 자산 매각으로 2조1366억원을 확보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1조1712억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두산은 자산 매각을 통해 얻은 자금을 활용해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2분기 기준 두산중공업의 단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은 각각 4조4358억원, 6900억원입니다. 부채 규모는 여전히 상당하지만,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무리없이 이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매각할 경우 재무구조 개선안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의 현금창출력과 건설기계 산업의 성장성을 고려하면 안 팔 수 있다면 안 파는 게 이익인 셈이죠.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 가격도 인수가능성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매각 가격은 최대 1조원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두산그룹의 희망사항일 뿐 시장은 8000억원 안팎에서 매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두산인프라코어의 에비타 멀티플(EV/EBIDTA)은 12.6배입니다. 이는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했을 때 12.6년 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에비타 멀티플이 높을수록 기업이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IB업계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에비타 멀티플을 6~8배로 보고 있습니다. 매도자가 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기업가치와 원매자가 보는 가치는 크게 차이납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9000억원의 베트남 붕앙 산업단지의 화력발전소 수주 계약을 따냈고, 얼마 전에는 4000억원 규모의 네팔 수력 발전소 건설 공사를 따냈습니다. 1년 7개월 만에 대형 수주에 연이어 성공한거죠. 채권단의 유동성 지원과 주요 자산이 매각되면서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부족 사태는 안정됐습니다. 일감도 무리없이 확보하고 있는 만큼 두산그룹 사태는 진화 국면입니다.

두산그룹은 2005년 대우그룹의 해체로 매물로 나온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해 글로벌 건설기계 회사로 키웠습니다. 15년 만에 두산중공업 유동성 사태로 경영권을 매각하게 됐습니다. 이 사태가 진화 국면을 맞은 지금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대한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두산인프라코어를 매각해 조금이라도 빨리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영권을 지키면서 대안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구태우 기자(teoku@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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