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넓얕]프롤로그 : 수학은 발견되었을까, 발명되었을까?

최정담 프롤로그 썸네일

이 콘텐츠는 최정담 님의 연재물 <학적 고를 위한 은 지식> 시리즈 프롤로그(prologue)입니다

이 스토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

<발칙한 수학책>을 집필하고 나서 ‘발칙한 수학 스토리텔러’라는 호칭을 얻은 최정담씨는 “현대 사회에서 수학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계산 학문으로 전락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수학의 정당한 지위를 되찾아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수학이 추구하는 엄밀한 정의와 논리적 추론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수학적 사고관을 발판삼아 가장 초월적인 질문들에 다가가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드리는 것이 연재의 목적입니다“라고 해요.

그에게서 ‘세상을 이해하는 법칙’에 대해 들어봅니다. 그의 글에서 ‘수학’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수학’ 대신 본인이 궁금해 하는 주제의 단어를 넣어보세요. ‘관계’도 좋고, ‘종교’도 좋고, ‘투자’도 좋아요. 이따금 뇌리를 때리는 혜안을 발견한답니다.


0. 프롤로그 : 새벽에 별들과 나눈 수학 이야기

저는 새벽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벽은 희미한 존재들만을 위한 시간처럼 느껴지거든요. 태양 뒤에 감춰져 있던 별들이 반짝이고, 도시 소리에 덮였던 나뭇잎 살랑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무적인 이야기에 묻혔던 개인적이고 소중한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 이 신비로운 시간에 산책을 하면 제 머리 속도 평소에는 현실적인 고민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는 희미한 생각들로 가득해집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신은 존재할까? 정신은 물질의 상호작용일까, 영혼의 영역일까? 내가 죽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으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답을 찾고자 합니다. 누군가는 종교에서 답을 찾고자 할 것이고, 누군가는 철학에서 답을 찾고자 할 것이며, 누군가는 과학에서 답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저 또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용하고자 하는 방법은 조금 특이합니다. 저는 수학을 통해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수학을 통해 진리를 찾겠다는 포부는 이상하게 들립니다. 종교나 철학, 과학에 비하면 수학은 초월적 질문과 한참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칙연산과 미적분학이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위치와, 사후 세계에 대한 대답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학이라는 학문을 제대로 고찰해 보면 이런 수학에 대한 판단은 섣부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학은 발견되었을까, 발명되었을까?

기하학의 정리 중 하나를 고려해 봅시다.

최단 경로 정리.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경로는 직선이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단 경로 정리는 참일까요? 두 가지 주장이 가능합니다.

첫번째 주장은 최단 경로 정리가 곧 자연의 원리이기 때문에 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수학 실재론이라고 불립니다. 어쩌면 두 점을 잇는 최단 경로는 직선이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또다른 우주에서는 최단 경로가 쌍곡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우주에서는 최단 경로가 직선인 것이 규칙으로 선택되었으며, 따라서 최단 경로 정리는 참입니다.

이 주장은 수학이 발견되었다는 입장으로 이어집니다. 비디오 게임이 코드 파일에 적힌 규칙대로 작동되듯이 우주는 수학의 규칙대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코드 파일이 실재하듯이 수학도 실재하는 것이며, 때문에 인간의 이성으로 발견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주장은 최단 경로 정리가 그저 인간의 관념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수학 반실재론이라고 불립니다. 수학 반실재론자들은 완벽한 직선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최단 경로 정리가 자연의 원리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대신 수학 반실재론에 따르면 최단 경로 정리가 참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끼리 약속한 바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 두 개의 명제를 비교해 봅시다.

A) 사과는 빨갛다.

B) 유니콘은 뿔을 가지고 있다.

두 명제 모두 참입니다. 그러나 두 명제가 참인 이유는 다릅니다. A가 참인 이유는 사과가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이며, 때문에 관찰을 통해 사과가 빨갛다는 사실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B가 참인 이유는 유니콘이 실제로 존재하며, 유니콘을 관찰해 보니 정말로 뿔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B가 참인 이유는 유니콘이 인간의 관념일 뿐이며, 우리가 그 관념에 임의로 ‘뿔을 가지고 있다’라는 성질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수학 반실재론자들은 최단 경로 정리 또한 B와 다를 바 없는 명제라고 주장합니다. ‘직선’은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완벽한 직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선’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관념이며, 최단 경로 정리는 그런 상상의 산물이 가지는 성질에 불과합니다. 이 주장은 수학이 발명되었다는 입장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관념에 불과한 수학은 우주적 원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반면 수학 실재론자들은 최단 경로 원리가 A와 같은 유형의 명제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수학의 명제들은 A 유형일까요, B 유형일까요? 아마 선뜻 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실 이 문제는 2천 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지성들이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흥미롭게도 찬반이 거의 대등하게 갈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수학 실재론과 반실재론은 모두 각각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 실재론자들은 최단 경로 원리 등의 정보가 자연에 ‘쓰여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실재론자들은 수학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디오 게임의 실체가 프로그래밍 코드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게임의 코드가 메모리 디스크에 exe 파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실체가 수학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설명하기 쉽지 않으며, 대다수 수학 실재론자들은 결국 현실 세계와 구분되는 초월적 세계를 가정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런 초월적 세계의 존재성은 많은 이들에게 납득하기 힘든 주장입니다.

한편 수학 관념론자들은 수학이 인간의 상상일 뿐이라면 어째서 수학의 원리가 자연과 그토록 잘 부합하는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리만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상대성 이론이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고, 선형대수와 미적분을 바탕으로 한 양자역학이 미시 입자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을 보면, 수학과 우주 사이에는 뭔가 깊은 관계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치기 힘듭니다. 극단적 수학 관념론자는 수학과 우주의 일치를 우연으로 치부하지만, 이 또한 많은 이들에게 납득하기 힘든 주장입니다. 이 질문은 수학과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서양철학의 모든 질문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일례로 수학 실재론은 유신론과 도덕 절대주의(시대와 문화에 독립적인 도덕 규범이 존재한다)를 설명하는 데 매우 좋은 이론입니다. 만약 수학이 존재하는 초월적 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에 신이나 절대적 도덕 원칙 또한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수학 반실재론은 무신론 및 도덕 상대주의(도덕은 시대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규칙이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때문에 새벽에 산책하다 보면 제 머리 속은 종교적 의문으로부터 출발해, 철학적 고민들을 거쳐 이내 수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집니다. 수학은 실제로 존재할까? 수학적 논리의 보편타당성은 그 근거가 무엇일까? 만약 박쥐가 수학을 만든다면 우리와 똑같은 체계에 도달할까? 언어는 논리적 기호로 완전히 환원 가능할까? 신과 우주와 인간에 대한 모든 궁금증은 결국 수학으로 귀결되며, 바로 이 점에서 저는 수학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계산 학문으로 전락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수학의 정당한 지위를 되찾아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수학이 추구하는 엄밀한 정의와 논리적 추론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수학적 사고관을 발판삼아 가장 초월적인 질문들에 다가가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드리는 것이 연재의 목적입니다.

저의 글이, 다음 번 여러분이 새벽에 산책을 나서실 때 생각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

“모든 훌륭한 수학자는 적어도 절반은 철학자이고, 모든 훌륭한 철학자는 적어도 절반은 수학자이다.” − 고틀로프 프레게

😎최정담은?

발칙한 수학 스토리텔러에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수학도 재미있는 ‘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온라인에서 수학 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죠. 2021년 기준 총 방문자 수 150만 회의 수학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 <유사수학 탐지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에서 ‘디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요.

수학과 언어학, 철학을 좋아하고 대부분 시간을 독서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찹쌀떡을 먹는 중이라고 합니다. 바흐를 좋아할 타입이라고 생각했다면 정확하다고 하네요.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수학 과목 수석 졸업했고 지금은 카이스트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수학과를 부전공합니다. 한국언어학올림피아드 장려상, 세종해커톤 대회 최우수상, 대만국제과학전람회 한국 대표, 2018 PUPC(프린스턴대학교 물리 대회) 은상, AMC(미국 수학 경시대회) 상위 2~5%, 2019년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2020년 대통령과학장학금 수혜 등의 경력을 갖고 있어요.

※ 넘버스 회원들을 위한 전용 공간 네이버 카페(넘버스멤버스)에 놀러오세요! 직접 물어보고 답하는 즉문즉답 코너가 마련돼있습니다. 마음껏 질문하고 토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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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2
    10:10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금요일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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