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가 지난 17일 공시를 통해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3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경기 파주사업장에 2024년까지 6세대(1500mm X 1850mm) OLED 라인을 깔고 기존 라인 확장 등을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월 6만 장의 생산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입니다.
LG디스플레이의 이번 투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번 증설의 대상이 ‘중소형 패널’이라는 점, 둘째는 이번 투자로 올해 예상된 투자의 상당액이 결정됐다는 점입니다.
P-OLED, LG디스플레이의 ‘먹거리’가 되다
LG디스플레이의 향후 수익원이 될 제품은 대형 OLED이지만 실제로 오늘날 수익을 내는 건 중소형 패널입니다. 이 가운데 모바일 제품은 OLED로 만들어지는데요. 플라스틱 기판을 적용한 OLED, 일명 P-OLED로 세계적 스마트폰 제조 업체 애플의 1티어 디스플레이 공급사가 됐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아이폰11에 처음 P-OLED를 넣기 시작한 뒤 아이폰12와 차기작 아이폰13에 연이어 제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이폰은 매년 2억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죠. 애플이 없었다면 LG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라인 증설을 생각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말 매출에서 IT 제품 비중이 41.8%, 모바일 제품 비중이 30.5%로 TV(27.7%)보다 높았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발 LCD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감소, OLED 양산 지연 등으로 2019년부터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어왔죠. 애플에 대한 P-OLED 디스플레이 납품, IT 제품에 대한 특수가 없었다면 올해도 영업손실이 이어졌을 겁니다.
LG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 패널이 탑재되는 제품군을 넓힐 계획입니다. 오늘날 OLED는 이미 스마트폰뿐 아니라 노트북이나 모니터, 태블릿 등 IT 제품에 보편적으로 탑재되기 시작했죠. 여기에 더해 향후 전기차에도 보편적으로 들어갈 잠재력이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전기차 시장에서의 OLED 성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데요. 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차량용 OLED 패널 시장 매출 점유율은 91%에 달했습니다.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LG디스플레이는 P-OLED가 ‘전기차에 가장 최적화된 패널’이라며 수주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기차로 넘어오면서 전력 소비가 많아지게 됐는데, OLED 패널은 LCD 패널 대비 전력 소모가 적어 주행거리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P-OLED의 유연성은 곡선으로 된 차량 디자인에 맞추기에 적합하죠. 전기차 시장 확대가 자명한 가운데 LG디스플레이가 P-OLED를 꾸준히 납품할 수 있다면 증설은 회사 수익성 측면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LG디스플레이는 컨퍼런스콜에서 “P-OLED 사업은 내부 역량 향상을 통해 사업이 안정화됐고 고객사와의 공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 물동 운영 기반과 수익 구조를 마련했다”며 “P-OLED는 전기차에 상당한 수주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 OLED 패널 납품설, 물 건너가나
자본적 지출(캐팩스·CapEx) 측면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번 중소형 OLED 증설에 2024년 3월 말까지 3조3000억원을 쓰겠다고 밝혔는데요. 이 투자가 단행된다면 LG디스플레이가 예상하는 올해 연간 설비투자 한도에 매우 가까워지게 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연간 자본적 지출을 에비타(EBITDA) 내로 줄이겠다고 알렸고, 특히 올해는 감가상각비 범위 내에서 설비투자 운영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과거 에비타를 뛰어넘는 무리한 증설로 손익이 나빠졌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회사가 올해 예상 중인 감가상각비는 약 4조5000억원입니다. 올해 단행한 자본적 지출은 지난 1분기 7678억원이었고 이를 단순히 연간으로 곱하면 약 3조1000억원 수준입니다. 감가상각비에서 연간 기준 자본적 지출을 빼면 약 1조4000억원의 여유분이 남는 거죠. 더군다나 올해 2분기보고서에서 자본적 지출의 연간 집행 예상치를 4조원 초반으로 밝혔으니, 사실상 남은 액수는 약 1조원 안팎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지할 게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에 대형 OLED 패널을 납품할 수 있다는 보도들이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증권가는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이 실현될 경우 LG디스플레이의 대형 OLED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증설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시장에서 언급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대형 OLED 패널 생산능력이 연 800만~1000만 대이고 당초 회사 기대치인 700만 대 이상을 출하하면서 삼성전자가 OLED 패널을 사는 경우입니다. 대략 150만~200만 대만 사더라도 LG디스플레이로선 대형 OLED 추가 투자가 필요해진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다만 LG디스플레이가 중소형 OLED 라인을 증설하면서 연내 대형 라인에 대한 증설 여력은 사실상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3조3000억원에 이르는 중소형 설비투자가 약 3년간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1조1000억원인데, 물론 실제 투자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진 않겠지만 거칠게 이 값을 올해 예상되는 자본적 지출에 대입한다면 최소한 올해는 더 이상 증설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결과가 도출됩니다.
무엇보다도 OLED TV는 가격이 비싸 아직 TV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LG디스플레이도 그간 대규모 증설을 단행했던 대형 OLED에 대해 추가 투자보단 먼 미래를 보고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당장은 전기차, 웨어러블을 비롯한 모바일 시장에서 P-OLED의 확장성이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LG디스플레이가 대형 OLED에서 급할 게 없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